바쁜 하루가 계속 이어진다.
삼십사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그야말로 익숙치 않은 시간들이다.
해가 뜨고나서야 잠이 들고, 악몽으로 땀에 흠뻑 젖은 채 정오에 일어나는
맥아리없는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가 라면을 끓여먹던 시간들이
내가 기억하는, 나에게 익숙한 시간들이다.
그렇지만 내일이라도 입에 풀칠할 걱정없이 돈을 벌고 있어서
'익숙치 않은, 바쁜 하루'의 요즘이 나는 참으로 좋다.
그래도 감정, 생명, 뭐 그런 것들에 무뎌져 가진 말자고 키우기 시작했던 라벤더.
하지만 한 달이 가까워 오도록 발아가 되지 않아 대결(?)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질 만큼
내 기분도 조금은 겸연쩍고 부끄러워졌다.
그리고,
어제였던 2016년 8월 12일 아침.
나의 화분에도 작은 싹이 하나 태어났다.
26일간의 기다림.
처음에는 내가 더 잘 키울거라며 큰 소리 쳤지만, 열흘 뒤부터는 라벤더 얘기에 목소리가 잠기기 시작했다.
보름이 지나면서 화분을 어떤 방법으로 내다버려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.
미련하고 괴팍한 나의 얕은 인내심에 제동이 걸렸던 건 순전히 바쁜 나날들 탓이었다.
아니었다면 어느 날 오후 3시에 절반은 충동적이었다는 핑계로 봉투에 녀석을 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.
발아가 시작된 지 2일째 오늘 아침의 라벤더.
앞머리가 붕 뜬 것 같다며 왁스로 진정시켜달라는 페퍼선니에게 내 첫 라벤더의 이름을 공개했다.
"내 라벤더 이름은 위즐이야"
"왜?"
"위즐(아이스크림) 꺼내려고 (베란다에) 나갔다가 발견했으니까"
"치- 뭐야, 자기도 대충 지어놓고"
오코, 노미, 야키로 이름 지은 걸 재미삼아 놀렸던 것이
그녀에겐 나름 상처가 되었던 것 같다.
"그래도 난 작명에 위즐을 가지러 갔다는 연관관계가 담겨있잖아"
"치- 그건 그렇네..."
무도에서 박명수와 정준하가 유치하게 투닥거리는 장면을 보며 재밌게 잘한다고 느꼈었는데,
페퍼선니와 내 대화를 곱씹어보니 그 장면들이 장난이나 대본이 아닌거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.
오늘도 몇 번이나 라벤더에게 가서 물을 주었다.
그러다 메말라 죽겠다며 걱정에 한 숨을 푹푹 내쉬던 페퍼선니를 보고, 강하게 키울거라면서 콧방귀만 뀌었었는데...
막상 싹이 트고나니 어찌나 귀여운지, 콧노래를 부르며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물을 자꾸만 주게 된다.
창문이 북향이라서 햇빛이 원체 잘 들어오지 않는터라 고 작은 녀석이 광합성 좀 하겠다며 몸을 구부리는 것이 신기하다.
화분을 통째로 들어서 반대로 놔주면 어느샌가 짧디 짧은 몸뚱아리를 곧게 펴다 기어코 해가 있는 반대로 다시 구부린다.
내가 보지 않을 적만 골라서 자세를 바꾸는 걸 보면 필시 녀석은 여자다.
페퍼선니가 바짝 긴장하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듯 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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